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Table of Contents
1. 역사
- 권력은 생산 수단을 소유함으로 온다.
- 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신이 요청되었고, 중세까지 유지되었다.
1.1.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 신 권력은 신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구권력을 몰아내기 위해 새로운 정당성이 필요했고 그것이 이성이다.
- 신과 이성을 지배를 정당화하는 관념으로 보고, 프랑스 대혁명을 신에 의해 정당화되던 구권력이 이성에 의해 정당화되는 신권력으로 대체되는 과정으로 보았다.
- 산업혁명에 의해서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요를 증가시켜야 한다. 기존의 시스템을 개선(신제품, 광고, 최적화)하거나, 시장 개척, 가격 인하의 방법이 있다.
- 시장 개척을 위해서 열강들이 식민지 개척에 뛰어들었다.
- 독일은 내부 문제로 산업화가 늦게 이루어져 식민지를 소유하지 못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의 문제를 명분으로 전쟁을 벌였다.
- 전쟁과 유행은 자본주의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
- 전쟁으로 일시적인 수요 증가기 있었지만, 결국 시장의 포화가 일어나 가격의 인하기 시작되었고, 노동자의 대규모 해고로 이어지면서 경제 공황이 찾아왔다.
- 미국은 이를 국가의 시장 개입을 강조하는 후기 자본주의 정책인 뉴딜
정책으로 벗어났고, 소련은 공산주의를 채택했으며, 독일은 군국주의를
선택하게 되었다.
- 히틀러는 민족과 영토를 연결 시켜 생각하며 영토 정화에 나섰다. 전쟁을 위해서 유태인의 자본을 몰수하며 그들을 학살했다.
- 신토불이와 같은 맥락이다.
- 일본도 역시 산업화를 이루어 중국에서의 영향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찾아왔고,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의 국지적인 전쟁만 있었다.
- 자본주의에게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시장을 축소시키며,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 공산주의에게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일부가 소유한 정당하지 못한 체제이다.
-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에 의한 체제 전복을 막기 위해 국가를 요청했다. 애국을 강조하며 공산주의가 반국가적이라고 강조했다.
-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며 detente시기가 찾이왔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제한하는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
-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체제이다.
- 왜곡된 세계에 서 있는 왜곡된 나를 보는 것이 지적 대화의 시작이다.
- 생산수단과 공급과잉 이 두 경제적 개념이 역사를 움직여 왔다.
- 산업혁명 이후에 이 현상이 두드러진다.
2. 경제
- 경제는 역사, 정치, 사회, 문화를 움직이는 중심 토대이다.
- 마르크스는 경제를 하부 구조, 역사, 정치, 사회, 문화를 상부 구조로 보고,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 초기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완전 자유 시장을 실행했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독과점 발생 등이 발생하였다. 게다가 경기 불황으로 이어지는 /시장 실패/가 발생했다.
- 후기 자본주의 혹은 수정 자본주의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했다.
효과는 있었지만, 정부의 규제로 인한 시장 왜곡으로 인해 장기 불황과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정부 실패/가 발생했다.
- 경기 불황으로 규제와, 단합으로 인해 고용을 축소할 수 없게 되어 역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 신자유주의는 후기 자본주의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자유 시장 경제를 강조한다.
-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여러 방식으로 구별할 수 있다.
- 엘리트 중심과 노동자 중심
- 수단과 목적: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전 단계
- 내포: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의 한 형태
- 현대의 성장과 분배의 문제는 신자유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의 대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장과 준비는 병행되는 것이지만 무엇을 우선시하는가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3. 정치
- 경제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택한 것이 자유민주주의
-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택한 것이 사회민주주의
- 독재가 일어나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각각 택할 수 있다.
- 박정희 정부는 독재 하에 시장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투자를 하는 자유주의 정부였다.
3.1. 보수와 진보
크게 보아 정치란 경제 구조를 결정하는 활동이다.
기본적으로 보수는 세상이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진보는 세상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수는 현 경제 체제를 유지하려 하고 진보는 경제 체제를 변화시키려 한다. 여기서 세계적으로 현대 경제가 신자유주의로 넘어왔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면 보수, 아니면 진보가 된다.
한국, 일본, 미국의 당 색은 특히 일반적인 색과 반대된다. 이것은 공산당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그들의 상징색을 오히려 정 반대되는 당만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크게 보아 세금을 걷는 비율로 공화당은 20%, 민주당은 40%, 사회당은 60%, 공산당은 80%를 채택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 자본주의는 규제가 아예 없는 제도이고, 신자유주의는 약간의 규제, 후기 자본주의는 비교적 많은 규제, 사회민주주의는 많은 규제, 공산주의는 전체적인 규제를 가하게 된다. 세금을 적게 걷고 규제를 줄이는 것이 보수적이며, 세금을 많이 걷고 규제를 늘려 복지를 증가시키는 것이 진보적이다. 이 둘 간의 조율은 이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 로 불린다.
군과 종교계는 매우 보수적이다. 군의 경우에는 그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 것은 방관이며 곧 보수이다.) 대기업일수록 더욱 보수적이며, 노조의 경우가 진보적이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Opium des Volkes)"이라고 말한 이유는 종교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서 잊게 만들고 개인에게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엔터테인먼트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3.2.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민중에 의한 "선출된 독재"와, 소수가 무시되는 "다수의 독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대되는 엘리트주의는 역사적으로 많은 폐단을 낳았기 때문에, 다수의 선택에 의해 국가의 정치 곧 경제 체제가 결정되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좋게 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스파르타는 엘리트주의,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었고, 이때 소크라테스가 "당나귀의 굼뜬 것을 깨우는 쇠파리"라고 주장했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스파르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아테네 시민에 의해 사형을 당하게 되었고, 이에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더욱 경멸하게 되었다. 플라톤은 지혜로운 철학자가 통치하는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는 급진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보수적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로 치우쳐져 있는 이유는 역사적 원인과, 교육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누군가의 기만의 의도가 있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대중에게 있다.